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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 '부여 왕릉원과 나성'

충남도청 2023. 9. 20. 13:00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

'부여 왕릉원과 나성'


백제 제 25대 무령왕의 아들이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26대 성왕이 서기 538년에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백제의 도읍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백제가 멸망한 31대 의자왕 때까지(660년) 부여는 120년이 넘도록 백제의 도읍지로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백제의 숨결과 흔적이 부여 곳곳에는 남아 있습니다.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인 왕릉원은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능산리고분군이라 불렸었는데, 2021년부터 정식 명칭이 ‘부여 왕릉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부여 왕릉원은 백제가 부여에 남긴 가장 대표적인 역사유적지 중 하나로서 2015년에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안내도 사진을 참고하면서 고분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왕릉원 안에는 총 20여 기의 고분이 있지만 발굴 및 정리를 해서 널리 알려진 고분은 모두 7기입니다. 야트막한 산 중턱에 모여 있는 7개의 고분은 둥그런 원형의 봉분으로 되어 있고, 내부는 돌로 이루어진 석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7개의 고분은 모두 오래 전에 도굴되어서 주인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1호분>

7개의 고분 중에서 가장 특색 있고 널리 알려진 고분은 1호분입니다. 1호분 무덤의 벽에는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맡은 상징적인 동물로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봉황), 북쪽의 현무(거북과 뱀)를 일컬음.)처럼 정교하게 채색된 벽화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호분 천장에는 아름다운 연꽃과 구름무늬가 그려져 있어서 백제 시대의 미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답니다.
 

<발굴조사 중인 3, 4호분>

7개의 고분 중 서쪽에 있는 3호분과 4호분은 학술발굴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고 합니다.
  

<부여왕릉원 아트뮤지엄>

왕릉원의 고분군을 살펴본 후 좌측의 절터 쪽으로 아주 낮은 능선을 넘어가면 무덤의 봉분 형상의 아트뮤지엄이 보입니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부여 사비시대의 왕릉군인 ‘부여 왕릉원’, 위덕왕(567년) 대에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왕실 사찰의 터인 ‘부여 능산리 사지’와 백제의 수도 사비의 외곽방어시설이자 도성의 안팎을 구분하는 <부여 나성>을 주제로 하여 만들어진 ICT(과학기술정책과 정보통신기술) 뮤지엄입니다.
이곳에서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돌방무덤 가상현실 갤러리, 홀로그램으로 만날 수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그리고 부여 능사 증강현실(AR) 체험존, 부여 나성 등을 첨단 기술로 재현한 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암리 고분(실물)>

부여왕릉원 아트뮤지엄을 둘러본 후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고분 한 기가 보입니다. 이곳 왕릉원의 무덤은 아니고, 부여군 초촌면 신암리에 가면 많은 고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부여왕릉원 벽화고분(모형)>

신암리 고분에서 몇 발자국 옮기면 ‘부여왕릉원 벽화고분(모형)’이 있습니다.
1호분의 벽화는 발굴 당시에는 선명하였는데,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색상이 퇴색하여 윤곽만 남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고분벽화의 보존을 위해 1호분의 내부를 폐쇄하였고, 그 대신 지금의 자리에 모형을 만들어 원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제 의자왕 단비(가묘)>

서기 660년에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패하자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의 의자왕을 당나라로 압송하였고, 그 후 4개월 만에 의자왕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병사하였다고 합니다. 중국 북망산에 오래도록 묻혀 있다가 2000년 4월에 의자왕의 영토(영혼이 깃든 흙)를 모셔와 이곳 왕릉원에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여 능산리 사지(절터)>

부여 왕릉원과 나성 사이에 절터인 능산리 사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공예품인 국보 제287호 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습니다. 동아시아 최고의 기술적 성과라는 평가를 받는 금동대향로의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능산리 사지는 이곳 절터에서 발굴된 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고자 왕실 차원에서 세운 원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부여 나성>

절터인 능산리 사지 바로 곁에 날렵한 자태의 부여 나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이며 축성 연대는 성왕대(523∼554)를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부여군의 지형을 지도로 보면, 북동쪽에서 흘러내려온 백마강이 서쪽을 흘러 남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동쪽에다가 나성을 축조하면 백제의 도읍인 사비가 완벽하게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형상입니다. 축성에 대한 백제인의 뛰어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나성의 모습입니다.  

<숭목전>

부여 왕릉원 입구 오른쪽에 숭목전이 있습니다. 숭목전은 백제시대의 종묘 격인 백제왕들의 사당으로서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마지막 사비 백제시대 왕(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긴 성왕부터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마지막 왕인 의자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부여 왕릉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운영기간 : 연중무휴 (설날, 추석 당일 휴무)
하절기(3월~10월) : 09:00 ~ 18:00/ 동절기(11월~2월) : 09:00 ~ 17:00
입장료 :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 
* 만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부여 군민 무료
주차비용 : 무료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들꽃지기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