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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생가터를 둘러보며

충남도청 2011. 1. 13. 12:05

가끔 이런 질문을 들을때가 있어요

 

"혹 종교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럴때마다 제 대답은 "저 다신교인데요"

 

제 대답이 질문한 분의 의도에서 벗어난 대답이라는 것을 알지만

제가 이렇게 대답하는데는 종교에 대한 저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인데요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때문이지요

 

 

 

혹 이분이 누군지 아시나요?

이분은 바로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 신부가 되신 김대건 신부님이예요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 곳은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우강면 송산리라는 곳인데요

송산리의 본래 명칭은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솔뫼'라고 불려지던 곳이예요

이곳에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성역지로  관리되고 있어요

솔뫼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우술라의 집'이라고 흔히들 부르고 있지요

그 이유는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 이름이 '우술라'였다고 하네요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모습이예요

이곳 1500여 평의 대지에는 생가와 우물이 복원되어 있고

또 김대건 신부의 생애가 담겨있는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어요

주말이면 20여대의 버스가 천주교 신자들을 태우고 이 성역지를 향해서 달려오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볼때면 믿음이라는 것

또는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종교라는 특정한 이유를 떠나서 보편적인 한 사람의 시선으로

김대건 신부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대대로 신앙심이 좋은 집안이었다고 하네요

김진후라는 증조부가 충청도의 사도 이존창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고 하네요

시골에서 낮은 관리로 살고 있었던 김진후는 천주교 박해로 인해 두차례의 체포와 석방을 겪다가

1805년에 다시 체포되어 1814년에 충청도 해미에서 옥사(순교)했다고 하네요

또 1816년에는 종조부인 김종한마저 대구에서 참수되었다고 해요

 

이 정도면 무서워서라도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했을법도 한데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아주 대단한 분들이 많았던것 같아요

 

 

 

 

결국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는 아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의 골배마실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이어갔다고 하네요.

골배마실과 한덕골은 일찍부터 비밀 신앙 교우촌으로 형성된 마을이었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한 집안이예요

 

1845년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서울로 귀국하여 서울에서 잠시 사목한 뒤 모친이 계신 용인으로 내려가

그 일대의 교우촌을 순방하면서 신자들을 돌보았다고 하네요

그의 모든 활동은 신자들을 찾아다니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요

당시 상황이 워낙 상황이었던지라

박해자들과 밀고자들의 눈길을 피해가며 비밀리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교우촌에 방문해서도 오래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미사 드릴 시간도 없었다고 해요

한밤중에 교우촌을 찾아다니며 벽에 고상을 걸고 성사를 준 뒤

곧바로 다른 교우촌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대해서

외부의 힘이 가해질때

그 신념에 대한 생각이 더 확고히 굳어지는것처럼

김대건 신부님도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결국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6월,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동료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 통로를 알아보기 위해 백령도 부근을 돌아보던 중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고 하네요

 

김대건 신부는 조정 대신들의 요구에 의해 옥중에서 영국의 세계지도 한장을 번역하였고

두장의 세계지도를 만들었으며 지리 개설서를 편찬했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한 분이셨던것 같아요

이처럼 김대건 신부의 서양 문물이나 지식에 대한 능력을 알아본 조정 대신과 임금은

천주교를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온갖 회유를 했었다고 하는데요

김대건 신부는 끝내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1846년 9월 16일에 26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고 하네요

 

김대건 신부는 말 그대로 모태 신앙을 끝까지 지켜낸 분이면서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올곧게 뿌리 내리게 한 분이셨던것 같아요

 

 

 

 

생가에 눈이 내린것처럼 어느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요

김대건 신부님의 이런 순교의 바탕위에서 이제 우리나라에도 종교의 자유가 생겼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요?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를 따뜻한 손으로 이끌어 주라는것이

천주교의  가르침이었다고 하네요

 

김대건 신부는 그 당시 유교사상에 젖어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하느님 앞에서는 남녀의 구별도

없고 부자나 가난한자도 없으며 양반과 평민도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교리를 가르쳤다고 하네요

이것은 지금의 현실에도 딱 맞는 말인데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