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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보상' 길을 따라서

충남도청 2011. 1. 12. 13:38

 

 

가끔 사극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행상 나가는 부보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 익숙하다 여겨서 혹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무심코 흘러보낸 부보상들의 행적을 따라

"예덕상무사' 전시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예덕상무사'라는 것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조직돼 전해 내려온

예산, 덕산 지방의 보부상을 관리하던 정부관서이다.

 

 

 

부보상은 주로 지역 장터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지방의 크고 작은 장터는 모두 이들 부보상에 의해 유지되었다.

현대로 말하면 이들이 지역 상권의 중심 역할을 하는 소상공인들이었다.

 

특히 우리 충남 지역은 내포문화를 중심으로 한 풍부한 농산물과 한산모시 같은

특산품들이 많이 생산되던 고장이라 부보상의 활약상도 매우 컸다고 한다.

덕산에 있는 "예덕 상무사'는 예산과 덕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부보상 기념 전시관이다.

 

부모상 전시관은  윤봉길의사 기념관인 충의사  내에 위치해 있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친근한 풍경이 멀리서 온 손님을 한발 먼저 마중한다.

지게에 등짐을 지고 가는 부상의 모습에서 실타래 풀리듯 풀려나오는 우리의 옛 풍경들

 

 

 

 

우리에겐 '부보상'이라는 명칭보다는  보부상'이라는 명칭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겨우 '부'와 '보'의 위치가 바꼈을뿐인데도 그 어감에서 오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부보상'전시관에 가면 '부상'과 '보상'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보은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는 말이다.

보상은 비교적 값이 나가는 상품들을 보따리에 싸서 이거나 들고 다녔기 때문에 '봇짐장수'라 불렸으며

부상은 가내에서 수공된 값싼 일상용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녀 '등짐장수'라고 하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보부상'은 바로 이 '보상'과 '부상'을 합쳐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원래 보부상의 정식 명칭은 ‘부보상’이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보부상’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바뀐 명칭이다.

이는 이성계의 중상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조직되었던 ‘부보상’ 단체를 ‘

보부상’이란 명칭으로 뒤집으므로서

조선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고자 했던 일제의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부보상은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던 사람들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매개하던 전문적인 시장 상인이었다.

한일합방으로 일본관헌에 의하여 부보상이 축출되었다.

그러나 예산.덕산 지방에서는 '예덕상무사' 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에 와서 기업인들이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것처럼

옛날에도 부보상이 우리사회에 끼친 역할은 매우 컸다

그러나 철저한 신분제도가 유지되던 사회였기 때문에

부보상들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는 매우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고조선의  '8조법'만 법이냐?

부보상에는 '임의 절목'이라는 책에 '벌목 조항이 있었다.

 

'벌목 조항'을 읽다보면 부보상 조직의 기강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들은 서로 단결력을 강화하고 스스로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장문법(杖問法)이라 불리는 자치규율법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위반 했을 때는 제명처분을 비롯한 각종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다.

또 일단 제명된 사람은 다시 부보상으로 활동할 수 없도록 추방시켰다.

 

그러나 혹독할 정도로 엄격한 장문법과 함께 전국을 무대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던 부보상 조직도  1910년대에 이르러 일본 관청에 의해

강제로 장터에서 축출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면서 잠시 부보상 조직이 재건되는 듯 했다.

그러나 곧이어 6.25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곳곳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로인해 부보상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교통이 발달하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 대형 쇼핑센터들이 들어서면서

부보상들의 활동무대였던 5일 장터 역시 하나 둘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우리 충청도 지역은 장터와 밀접한 연관을 맺었던

부보상들이 많이 활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타 지역에 비해 장시문화가 발전했던 것도

부보상들의 역할이 컷 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