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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백마강변 자온대 위의 멋진 정자, 수북정

충남도청 2021. 12. 10. 12:00

 

부여 백마강변 자온대 위의 멋진 정자, 수북정


▲ 넓은 자온대 암반 위에 지은 부여 수북정

우리 선조들은 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멋진 누각이나 정자를 지어 경치를 즐기고 풍류를 누리는 멋을 누렸던 것 같습니다.
백마강 주변에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낙화암도 있는데, 그보다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면 백마강이 휘돌아가는 규암면 절벽, 자온대가 있고 그 위에도 정자가 하나 서 있습니다.

백제 때 백마강을 오가며 왕이 이 바위 언덕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고 해서 '자온대'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암벽에는 송시열의 글씨로 '자온대'가 새겨져있다고 하는군요.

▲ 부여 수북정 

그 정자의 이름은 수북정입니다. 넓은 암반 위에 계단을 몇개 올라가면 딱 어울리는 크기의 정자가 있습니다. 수북정 앞에 있는 단풍에 아직도 ?은 빛이 남아서 늦가을의 정취를 보여주는데 1-2주 전에는 훨씬 멋있었을 것입니다. 지도로 확인해보니, 수북정 바로 옆에 있는 다리는 백제교입니다.

▲ 부여 수북정 사진찍기 좋은 곳

수북정을 바라보며 오른쪽에는 포토 포인트, 사진 잘나오는 곳이 표기된 돌판이 있습니다.
누군가 매우 감성적인 분이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백마강 맑은 바람을 안고...'라고 새겨져 있고, 배경으로 촬영을 할 때에는 수북정과 돌계단을 찍고, 인물 사진이라면 계단이나 정자에서 찍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수북정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된 유적입니다.
수북정은 부여 8경의 하나로, 가까운 곳에 규암나루터가 있어서 나루터 부근에 있는 규암 마을은 1960~70년대에 상업이 아주 번성했다고 합니다. 

수북정은 언제 건립됐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1557~1623)이 이곳에 와서 지은 정자로, 김흥국의 호를 따서 수북정으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안쪽에 빼곡하게 걸린 22개의 현판 중에는 신흠의 팔경시판도 있다고 합니다.  

정면에서 볼 수 있는 현판은 유한지 글씨라고 합니다.

수북정에서 보이는 경치가 참 시원시원 합니다. 명승 제63호인 구드래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자입니다.
백마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너른 들판은 백마강이 휘돌아가는 안쪽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퇴적되어 생긴 들판입니다. 지금 이곳은 백마강생활체육공원, 부여 백제리그야구장등의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름이라면 신을 벗고 정자 위에 올라가서 백마강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호흡을 맡길텐데, 지금은 조금 춥습니다~^^

수북정 밖에도 현판이 있는데 안쪽에도 역시 '수북정' 현판이 있습니다. 안쪽의 현판은 부여군수 전준기가 쓴 글씨라고 합니다. 전준기 군수는 부여군 14대 군수로 1970.3.6.~1971.8.2.까지 군수였다고 하니, 이 현판을 만든지도 벌써 50년이 지났군요.

▲ 백마강 노래비

자온대 수북정에서 내려오면 왼쪽으로 '백마강' 노래비가 있습니다.
글씨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읽어보니, 지소 황일호(1588~1641) 시를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황일호의 부친과 수북정을 세운 김흥국의 우의가 깊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이 비를 세운 것인데,  
황일호는 허균보다 20여 년 뒤에 태어났는데, 허균이 한글 '홍길동전'을 썼고 황일호는 한문으로 '홍길동'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합니다.

황일호는 인조3년(1625) 가을에 백마강歌 9장을 썼다고 합니다. 그 중에 4장. 5장, 6장이 시 노래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황일호의 묘는 부여읍 가증리에 있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라고 합니다.

백마강 노래비를 지나 길을 따라 백마강가를 산책해도 좋을 것입니다.

▲ 수북정에서 내려오면 백마강변 산책로가 이어진다.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젊은태양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부여 수북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