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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의 고풍스러움과 사계 김장생

충남도청 2021. 10. 10. 12:00

사계고택의 고풍스러움과 사계 김장생

사계고택에서 만나는 김장생의 자취


▲ 사계고택

계룡시를 돌아보면서 제일 먼저 떠 오른 곳이 사계 김장생의 고택이었다. 이곳 계룡시 여행지로 광산 김씨의 흔적이 많이 있다. 사계고택은 사계 김장생 선생이 55세 되던 1602년에 건립되어 정부인 순천 김씨와 살았던 집이다.

▲ 사계고택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있다. 이 중에 사랑채인 은농재는 처음에는 초가지붕 형태였는데 지금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되어있고 배치도 당대 양반가의 일반적인 방법을 따랐다.

▲ 사계고택

그 후에 사계 선생의 8째 아들인 규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대문에는 현대 서예가 여초 김용현이 쓴 ‘沙溪古宅(사계고택)’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 중기 예학의 태두인 사계 김장생 선생이 계축옥사로 인하여 이곳에 낙향하였다.

▲ 사계고택

이곳에서 여생을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유태와 아들인 신독재 김집 등 후진 등을 양성하며 그의 말년을 보냈다. 고택은 조선 중기(1602)에 건립된 건물로 넓은 대지 위에 기와집과 정원, 연못이 있는 광산 김씨 종갓집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꽃들이 피어나 고풍스럽다.

▲ 사계고택

안으로 들어가면 중심에 은농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왼쪽에 ‘사계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은 사계의 일생일대기를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 사계의 일대기, 허씨부인 설화이야기, 병자호란·임진왜란 때의 활약상, 사계 선생님의 스승과 제자, 돈암서원 등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 사계고택

그는 1623년(인조1)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반정의 양 주역인 김류와 이귀에 의해 산림처사로 추천, 장령(掌令)·사업(司業) 등이 제수되었으나 아파서 사양하였고, 이후에도 조정에서 계속 사람을 보내어 여러 관직을 제수했으나, 번번이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 사계고택

사계 김장생 선생은 19세에 창녕조씨와 혼인하였으나 39세에 사별하고 41세에 순천 김씨를 맞이하였다. 그녀는 절재 짐종서 장군의 7대 손녀였다. 그의 아버지 김수언이 논산에 자리를 잡으며 사계는 문인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의 조상인 절재 김종서의 신원을 위하여 신분을 감추고 명문대가인 사계 가문에 시집가기를 당부하였다.

▲ 사계고택

평소에 효심이 깊던 김씨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17세에 시집와서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사계의 병세가 악하되자 순천 김씨는 정성으로 간호하고 사계의 서거 이후 3년 상의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살 의미가 없다면서 단식하였고 계유년(1633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 사계고택

그의 저서로는 『상례비요』 4권을 비롯하여, 『가례집람』, 『전례문답』, 『의례문해』, 『근사록석의』, 『경서변의』와 시문집을 모은 『사계선생전서』사 전해지고 있다.

▲ 사계고택

이곳에서는 사계블루밍(Blooming)축제로 어린이사생대회와 플리마켓, 인문학강좌 및 음악회와 플리마켓 등이 열리는데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사계문화살롱으나 사계 라탄공예, 사계 규방공예, 사계문화의 밤, 염선재 애랫목이야기(사계 미니도서관) 등의 행사와 배움의 시간이 있다.

▲ 사계고택

또한 전통의례체험으로 전통혼례식과 전통 성년식 그리고 사계고택 사진관(리마인드 웨딩)등이 있으니 또한 홈페이지와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그리고 사계고택에서 출발하는 이곳에는 왕대산 정상을 통과하는 사계솔바람길을 걸으면서 김장생을 생각하여도 좋다.

▲ 사계고택

사계고택
주소 : 충남계룡시 두마면 사계로 122-4
전화 : 042-840-2863

▲ 사계고택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이병헌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계룡 사계고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