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가볼만한곳, 옛담이 아름다운 반교마을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원공'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입장과는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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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에서 서쪽으로 구룡면을 지나 외산면으로 들어서면 산은 점점 높아지고 산세도 수려해진다.
이는 차령산맥이 부여 서북쪽으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향해 내달리던 차령산맥이 차마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보령과 부여를 경계로 멈춰선 것이다.
바로 그곳에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커다란 산이 솟아 길을 가로막아 선다.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아미산이다.
▲ 아미산 아래에 부여 가볼만한곳인 옛담마을 반교마을이 펼쳐져 있다.
5일, 아미산의 동쪽 산기슭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마을이 있다하여 들어가 보았다.
부여 외산면에 위치한 반교마을은 충남에서 유일하게 옛 담으로 등록된 문화재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아미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마을 앞으로 조그만 반교천이 졸졸 흐르고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원래 널판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하여 처음에 판교라 불렀으나 지금은 반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반교천을 건너자, 오른편에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과 넓은 잔디 광장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 생각과 달리 뜻밖의 현대건무로가 잔디광장이 있다 보니 혹시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여 당황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원래 초등학교였던 이곳은 유아와 청소년들이 자연과 친숙해지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새롭게 쉼터공간으로 만든 곳이라 한다.
누구나 예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 쉼터인 자연유스호스텔이다.
다리를 건너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마을길 답지 않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마을로 안내를 한다. 돌담은 마을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이어진다.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 앞 텃밭까지도 돌담으로 되어 있다. 그 돌담 너머로 오래된 옛집들의 지붕만 살짝 고개를 들고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 돌담길이 양쪽으로 늘어서 안내를 한다
돌담은 막돌(호박돌이라고도 함)을 주워다가 건성건성 쌓은 것 같으나 제법 견고해보인다.
돌담의 두께도 아래는 90cm 위는 60cm 정도로 두껍지만 큰 돌과 작은 돌을 공간에 맞게 짝을 맞추어 쌓아 전혀 허술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긴 돌담을 쌓게 되었을까? 돌의 생김새로 보아 다른 곳에서 가져올 만한 모양과 특징도 없다.
그냥 주변에 있는 돌을 주워 다가 쌓은 것이 틀림없다.
궁금하던 차에 마을을 지나던 어르신에게 여쭈어보았다.
그 어르신은 귀가 많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다.
"이 많은 돌담이 어덯게 만들어 진 건가요?"
"여기가 원래 돌밭이었어! 집터를 다지면서 돌이 워낙 많이 나오니까 그것으로 담을 만들었던 거지."
"그렇게 돌이 많았나요?"
"저 뒤 산 이름이 아미산인디 전부가 돌산이여. 돌이 월마나 많았으면 도팍골이라고 불렸것어."
돌이 많은 이곳에 처음 들어와 집을 짓고 밭을 일군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논, 밭 한 평이 아쉬웠던 당시에 어쩌면 기회의 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도, 캐도 끝없이 나오는 돌을 보물인양 인내와 희망의 끈을 가지고 열심히 돌을 캐어 돌담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 부여 반교마을 안 돌담길 모습
▲ 반교마을 안 텃밭에서 어르신이 마늘을 캐고 있다.
그렇게 만든 돌담이 오늘날에는 등록문화제 280호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옛담마을이 되었다.
더욱이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작가이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곳에 "휴휴당(休休堂)"이라는 집을 짓고 살고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휴휴당은 '편히 쉬어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마을 어르신 이야기로는 조선시대 때 나주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끝없이 나오는 돌로 돌담을 쌓고 큰 마을을 형성하기까지 많은 애환이 있었을 것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에서
마을사람들의 마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 돌담이 보기보다 견고하게 쌓여 있다.
▲ 반교마을 감자밭에 감자꽃이 예쁘게 피었다.
돌담은 양반집 담처럼 높지는 않지만 어른 어깨높이(150cm)정도로 마을 전체의 집 담을 쌓은 것으로 보아 얼마나 돌이 많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돌담을 왜 어깨 높이로만 쌓았을까? 담이 높지 않으니 마을길을 지나면서 집안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기 보다는 언제나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일 돌담을 안으로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였다면 어떠했을까?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서로 잘 알지 못해 도시처럼 삭막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 많아 더 높이 쌓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마을사람들이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며 소통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 흉금을 터놓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 부여 가볼만한곳, 반교마을 안 돌담길
▲ 밭둑에도 돌담이 쌓여 있다
당시에는 외부로부터 침입자가 있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하고 대처해야 했기 때문에 서로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담은 소유를 의미하는 경계의 의미도 있지만 돌이 많아 돌담을 쌓게 된 이곳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데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살면서 터득했을 것이다.
결국 돌은 집터를 고르고 밭을 일구는데 큰 장애물이었지만 사람들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데 돌담이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오늘날 옛 담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까닭도 이런 멋진 반전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 위해 찾아오지 않나 싶다.
▲ 반교마을 사람들이 마을길을 걸으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오랜 옛 이야기를 간직한 반교마을. 그 돌담길은 오래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고향 길처럼 마냥 정겹고 푸근하다.
또한 이 길은 삶이 팍팍한 오늘날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는음이 풍성해지는 고샅길이 아닌가 싶다.
반교마을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옛 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보는 즐거움을 얻기를 고대해본다.
[위치 정보]
부여 가볼만한곳 반교마을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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